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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재공>사헌부지평공휘부묘표(司憲府持平公諱溥墓表)
司憲府持平公諱溥墓表 日趙君秀勳抱其家牒來曰我十六世祖持平公墓在淳昌郡豊山面嶝洞亥原但顧文獻斷續杞宋無徵實爲子孫無窮之恨墓舊有碑而歲久字럵殆不可讀庚戌春宗議齊發將欲改竪焉一言記之正會竊謂尚論古人於數百載之下誠難矣昔史遷傳荊軻徵諸醫今公之雲仍能勤於述先愈遠愈不忘亶知公必有積累之德而發於久遠者如此徵之子孫豈可與徵醫比哉按公玉川人自高麗門下侍中璋始玉川府院君元吉玄孫玉川君生典工判書瑛我太宗朝屢徵不起判書生生員龜山生員生士淳文司諫院正言行沔川郡守基爲公考公諱溥字連甫朝奉大夫司憲府持平配淑人長水黃氏吏議保身女領相翼成公喜后墓神左生二男長希忠生員次希溫成悦訓導孫潤屋號遯世菴世宗朝文大司諫五世孫德隣僉知中樞府事號慕菴自淳昌入高敞之使臣院公之功之行雖不可孜然莫爲之源曷有其流哉是役也始終幹其務者正勳秀勳 歲庚戌上元 安東 金正會 撰幷書 사헌부지평공휘부묘표(司憲府持平公諱溥墓表) 어느 날 趙君 秀勳이 家牒을 안고 와서 말하기를 우리 十六世祖 持平公의 墓가 淳昌郡 豊山面 嶝洞 亥坐에 있는데 다만 文獻이 끊겨 杞나라 송나라를 고증할 길이 없음에 子孫들의 끝없는 포한이 되옵니다. 墓에 예전 碑가 있는데 세월이 오램에 글자가 희미해 거의 읽어 볼 수 없게 되어 庚戌年 봄에 宗議가 일제히 일어 장차 改竪하려 하는데 한 말씀 기록해 주십사 하므로 正會 그윽이 말하기를 예전 분들 數百年 뒤에 論하기란 진실로 어려운 일이라 예전에 史馬遷이 荊軻의 傳을 지으면서 醫員에게 고증을 했는데 오늘날 公의 후손들이 先世를 繼述하여 더욱 오랠수록 더욱더 잊지 못하니 참으로 公이 반드시 德을 쌓음이 있어 이처럼 오래도록 發蔭함을 알겠으니 자손들에게 고증하는 것이 어찌 醫員에게 고증하는 것에 비기겠는가? 살피건대 公은 玉川人으로 高麗 門下侍中 璋에서 시작하여 玉川府院君 元吉이 玄孫이요 玉川君이 典工判書 瑛을 낳으니 太宗朝에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判書가 生員 龜山을 낳고 生員이 士淳을 낳으니 文科 司諫院 正言으로 沔川郡守를 지내니 이분이 公의 아버님이 되신다. 公의 諱는 溥요 字는 連甫이니 朝奉大夫 司憲府 持平을 지냈다. 配淑人 長水黃氏는 吏曹參議 保身의 따님으로 領相 翼成公 喜의 后이고 墓는 祔葬했다. 二男을 낳아 長은 希忠이니 生員이고 次는 希溫이니 咸悅訓導이다. 孫 濶屋 號가 遯世菴이니 世宗朝에 文科 大司諫이고 五世孫 德隣은 僉知中樞府事로 號가 慕菴이니 淳昌에서 高敞 使臣院으로 들어 왔다. 公의 功業과 行蹟을 비록 상고해 볼 길이 없으나 그러나 근원을 하지 않고 어찌 그 흐름이 있겠는가? 이 役事에 始終 그 業務를 主幹한 이는 正勳 秀勳이다. 歲庚戌(一九七○)年 正月 보름에 安東 金正會는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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